'전후처리'로 이루어진 귀환의 과정: 해방이후 해외 한인의 귀환관련 자료

 해외 한인의 귀환은 전후 처리와 관련하여 연합군 총사령부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다. 당시 해외 한인의 수는 50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에 미국은 종전 전부터 전후 처리의 일환으로 해외 한인의 귀환 문제를 조사 분석하고 있었다. 국무부와 육군부를 중심으로 논의된 해외 한인의 국적 논의와 귀환에 대한 방침은 연합군 총사령부에 계승되었고, 연합군 총사령부는 종전 후 한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 및 태평양지역 한인 및 일본인 등의 본국 송환을 주도했다.

따라서 전후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 귀환을 주도한 정책 부서인 연합군총사령부나 미 육군부, 미 국무부 관련 문서군에는 해외 한인들의 귀환관련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각 자료들에는 귀환에 관한 전반적인 정책 사항과 각 지역별 귀환 추이, 각 지역별 한인들의 주거 및 거주 상황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자료는 해외에 거주하던 한인의 생활 및 해방 후 이들의 귀환과정을 파악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료라 하겠다.

특히 삼부조정위원회(SWNCC) 산하 극동소위원회(SFE, Sub-Committee on Far East)에서 작성한 부문별 보고서는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정리한 문서로 K시리즈로 분류되어 있다. 이하에서는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해외한인 귀환관련 자료가운데 주요 자료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02_42_01C0001_003K-1 Preliminary a, Korea: Protection of Koreans Abroad1945-07-20

이 자료는 해외 한인의 국적부여 문제와 외교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규정한 것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2차 대전 후 해외 한인의 외교적 보호책임은 공동책임을 지는 국가들의 몫이었다. 이는 미국과 소련이 해외 한인의 귀환 교섭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련 점령지역 귀환문제는 미소가 외교적 책임 당사자로서 협의의 주체가 되었다.

 

1) 일본지역 한인들의 귀환

 

참조코드
AUS005_06_03V0000_745

일본군을 태우고 일본으로 향하는 귀환선의 모습이다. 적정 탑승인원은 2천명이지만 매일 4천명을 태우고 운항한다고 한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는 재일조선인들을 태워서 온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국인들은 항구에서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02_42_01C0001_009K-7 Preliminary, Korea: Repatriation of Koreans in Japan1945-04-25

RG 59, Records of the Office of Assistant Secretary and Under Secretary of State Dean Acheson, 1941-48, 1950, Entry 670, Box 12, "Korea"에 포함된 것으로 재일한인 귀환문제를 다루고 있는 1945년 4월 25일 극동지역 분과조정위원회 한국소위원회 문서이다. 본 문서에서는 일본에 거주하는 한인의 수와 배경, 그리고 종전 후 이들의 귀환은 물론 잔류하게 될 한인들의 국적문제까지도 취급되었다. 소위원회 측은 일본 내 한인들에 대해 별다른 송환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150만 명의 한인 중 120만 명은 한국으로 귀환할 것이며, 나머지 30만 명은 일본에 잔류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러한 판단은 한인들 중 대부분이 빈한한 상태에 있는 일용 노동자들이며 종전 후 일본 경제의 악화와 실업의 증가로 더욱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잠정적 결론이었다. 한편 소위원회 측은 이들 120만 명의 한인은 식민지 시기 일본의 동화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적대시할 소수 종족집단이 될 것이라며 이들의 귀환이 필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재일한인의 귀환에 대해 소위원회 측은 “일본 국적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한인들을 송환시키되, 한국인의 신분확인과 여행허가증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이들의 통제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많은 한인들이 한국으로 귀환한다면, 한국의 경제와 사회질서 역시 매우 곤란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참조코드제목
AUS179_01_05C0137

RG 332, USAFIK, XXIV Corps, G-2, Historical Section, Box No. 33,

Military Government Histories: Kangwon Police thru Repatriation (7 of 7)

RG 332 제2차 세계대전기 미전구문서에는 주한미24군단 정보참모부(G-2) 예하의 군사과(軍史課)가 1946년 초부터 주한미군정사 작성을 위해 수집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Box 33 사료철에는 한국인의 귀환과 관련한 계획, 귀환자 수, 귀환 협의에 관한 신문 보도 자료, 38선 이북 지역 한국인들의 귀환 보류문제, 귀환 상황 등에 대한 자료들이 다수 들어 있다.

 

 

 

2) 중국 지역 한인들의 귀환

중국지역 한인의 귀환과 관련한 자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처 소장 중국·버마·인도 작전지구 미 육군 기록물, 미 육군부 관련 부처 기록물과 대만 국사관 소장 국민당정부 기록물에 포함되어 있다. 대만국사관 소장 자료들은 2012년 『해외사료총서: 광복 이후 재중 한인의 귀환관련 사료』Ⅰ, Ⅱ 로 출간된 바 있다. 본 자료집에는 해방 이후 재중 한인의 귀환과 관련된 전체 현황을 알려주는 총론 격에 해당하는 사료 및 화중·화남지역 한인의 귀환과 관련된 문서를 수록하고 있다.

해외 거주 한인들의 귀환이 전후 처리의 과정에서 각 지역 정부와의 협의 속에 진행된 점을 감안하면, 연합군 총사령부의 입장과 정책을 알려주는 미국 담당 부처의 자료와 해외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각 지역에서 생산된 정부 기록물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한인들의 귀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그 실체와 성격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하겠다. 이하에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중국지역 한인 귀환 관련 자료를 소개하도록 한다.

 

참조코드
AUS005_06_03V0000_629
한국인 귀환자를 조사하는 모습이다. 인천항에서 만주 다롄에서부터 온 귀환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1945.2.28.)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02_42_01C0001_005

K-3 Preliminary, Korea: Political Problems

: Koreans Outside Korea

1945-03-28

삼부조정위원회(SWNCC) 산하 극동소위원회(SFE, Sub-Committee on Far East)에서 작성한 K 시리즈 문서 가운데 하나이다. 만주국에 고용되어 있는 한국인들의 처리문제에 관한 자료이다. 만주에서 한국인들이 기술직이나 행정직으로 종사하기까지의 과정과 현재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자료는 만주지역 한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당시 미국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만주의 한인 가운데 중국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국인들은 계속 정착시키고 일부만 귀환시키는 것이 중국 만주지역과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40_01_00C0006

Box 28, HIstorical Records, Problems of Cooperation,

Thru, Repatriation of Japanese, Policy Documents & Radio

1945-10-09

중국ㆍ버마ㆍ인도 작전지구 미 육군 기록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아시아지역에서의 미 육군의 전투 활동에 관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이전에는 미 육군사령부 문서군(Records of United States Army Commands, 1942~)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주로 중국지역 전투 사령부 문서와 합참 회의, 정보부 주간 보고서, 일본인들의 송환, 조선인 귀국 관련 자료들이 수집되어 있다. 중국지역에서 일본인들의 귀환문제에 관한 합동회의 자료 부속문서에는 종전 당시 중국, 일본인, 한인의 통계, 귀환절차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37_05_00C0001_015Status of Korean Trade and Repatriation1946-12-18

RG 407은 1917년 이후 미 육군 부관부실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정리한 문서군이다. 이 문서군에는 미국이 점령했던 극동지역에 대한 경제, 교육, 자연자원과 관련된 정보를 정리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점령지역에 대한 민정과 군정 관련 기록들을 1954년도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해외지역 대외활동 문서에 북중국지역의 한국인 귀환문제를 다루고 있는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04_25_00C0067

RG 338, Records of United States Army Force in Korea,

Lt. Gen. John R. Hodge Official File, 1944-48, Entry 11070,

Box 69, 송환·귀국·상업 관련 자료, 1946-49

1945

이 사료철은 하지 장군 문서철이라고 명명되는 미군정 자료 중 대표적인 한국관련 자료이다. 하지장군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주한미군 최고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본 문서철에는 하지장군 또는 주한미군정에 수발신된 서신 및 보고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69번 상자의 문서는 해외 거주 한인들의 귀환에 관한 연합군 총사령부의 지시사항 및 정책 추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지역 한인들의 귀환정책에 관한 자료이다. 이들 자료에서는 선양에서의 한국인 귀환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송환에 따르는 비용 처리문제, 수송 방식, 귀환한 한인들의 식량사정 및 거처문제 등에 관한 내용 등 1948년 초 마무리되는 중국지역 한인들에 대한 연합군 총사령부의 귀환정책 추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이 밖에도 일본 거주 한인들의 귀환문제, 무국적 일본 거주민들의 처우 및 재일한인들의 처우 문제에 관한 자료, 사할린 한인의 귀환, 전범 처리문제에 관한 자료들도 들어 있다. 본 자료는 단일 문서철 내에서 1946년에서 1948년 사이 해외 거주 한인들에 대한 귀환정책 추이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3) 남부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

2차 대전의 주요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했으며, 미국은 일본을 단독점령하고, 소련은 시베리아 및 사할린 등지의 영토를 점령하였다. 이러한 양측의 군사적 경계는 해외 한인의 귀환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해방 무렵 소련 점령지역에는 만주지역에서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에 억류된 약 1만5천 명의 한인과 사할린에서 이동이 봉쇄된 4만 여명의 한인이 있었다.

동아시아 전후처리를 주도한 미국은 연합군총사령부를 통해 소련, 중국 등과 교섭하며 동아시아 귀환을 조율해갔다. 대일점령을 우선 순위에 둔 미국은 일본, 중국, 소련 지역 귀환을 순차적으로 진행해갔다. 1946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귀환교섭은 태평양 전쟁기부터 이어진 미소협상의 미묘한 협력, 견제구도 틀에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온전한 국적조차 부여받지 못한 한인의 국제적 현실과 냉엄한 전후 동아시아 질서 속에 한인의 귀환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지게 되었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37_05_00C0001RG 407, The Foreign Services of the U.S.A.1947

RG 407 부관부 문서군에는 미국이 점령했던 극동지역에 대한 경제, 교육, 자연자원과 관련된 정보를 정리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점령지역에 대한 민정과 군정 관련 기록들을 포괄하고 있다. 이 문서군 내 대외활동자료 가운데 사할린 귀환관련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4)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도서 지역 한인들의 귀환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
AUS012_14_00C0001Repatriation of Korean Civilians1946-01-26

RG313 문서군은 군사수송지원부대 등 12개의 부대가 생산한 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해군자료(Flag File)는 태평양함대사령관(Commander-in-Chief, Pacific Fleet/CINCPAC)과 대서양함대사령관(Commander-in-Chief, Atlantic Fleet/CINCLANT)을 포함하는 작전전구를 감독하는 부대에서 작성된 “Red" 기록과 태평양함대 지원부대사령관(COMSERVPAC)과 대서양함대 상륙훈련사령관(COMPHIBTRALANT)을 포함하는 하위급 사령부에서 작성된 “Blue" 기록으로 구분된다. 본 자료는 "Red" 기록 중 하나로 1946년 1월 26일 마리아나 사령관이 생산한 자료로써 한국 민간인 송환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으로 송환될 남녀, 어린이 명단이 포함되어 있다.

 

 

참조코드제목생산기간사작일
AUS012_12_00C0001

Repatriation of Japanese Nationals, Status of,

as of 2 Nov. 1945., etc.

1945-11-02

이 자료는 RG 313 중 “Red”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1945년 11월 2일 중앙태평양 전방지역 사령관이 생산한 자료로 일본인 송환에 관련된 것이다. 일본으로 송환된 일본인 수, 수송선 이동 경로, 일본군 무장해제 및 송환 진행 상황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록 자료에 비일본인 송환절차에 대한 자료가 들어 있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들에 대한 송환 절차 및 규정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주로 상하이와 하카타 왕복선을 이용해 부산으로 이동하는 경로로 이동되며, 북한에 거주지를 두고 있는 한국인들은 송환을 보류한다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