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위생과 방역

1950년대 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위생과 방역

 

1. 들어가며

 

인류는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특정 장소에서 밀집하여 오래 정주하는 생활 방식을 선택했다. 정착 생활은 풍요를 가져왔지만 반대로 인류가 전염병 확산에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낳았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은 더 많은 물자와 인간의 이동을 장려했고, 그로 인해 풍토병은 인간 숙주를 타고 전염병으로 확산되었다. 전근대 시대에도 전염병은 사회의 고질병이었고, 때로는 정치적 격변의 주요 조건으로 작동하였다.

근대 의학의 발전과 백신의 보급은 인간이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심어줬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발흥하자 전염병은 인간 개인의 생사 문제로 국한되지 않았다. 건강한 신체는 곧 강한 군사력, 생산적 노동력으로 여겨졌다. 국가는 정주민을 정치적, 문화적 측면에서 '국민'으로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위생과 방역은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전염병 극복은 개인의 문제에서 강한 국력을 위한 국민의 양성,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직접 국민의 신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침투하는 권력의 한 형태로 부상했다. 공공 위생 및 방역 체계로의 편입은 '보호받는 국민'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2. 1940년대 후반~1950년대 한국의 보건위생과 방역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희열이었지만 곧 사회경제적 불안을 의미했다. 한반도 바깥에서 3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귀환하고 있었지만 한반도에서 방역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식량난으로 영양 상태까지 열악해지자 1946년 콜레라가 대유행했다. 여름부터 시작된 유행은 12월 누적 사망자 1만 1천여 명을 기록했다. 당시 콜레라 사망률은 무려 60~70%에 달했다.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정은 일제 식민지 보건체계를 활용해 전염병 유행을 막고자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상북도의 상황은 식량난, 전염병 유행이 심각하여 완전 고립되었고 통행금지까지 내려졌다. 결국 이러한 혼란은 대구 10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은 기존의 제국-식민 체계의 해체를 의미했다. 패권 국가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유엔과 국민국가(nation state)가 세계질서의 기본 단위로 설정되었다. 미국과 소련을 주축으로 한 진영 간 경쟁, 대립이 발생했지만 이들은 국민국가를 인정하면서도 패권 국가로서 냉전의 우방국을 통합하고 관리해야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서구 헤게모니로부터 이탈했던 동아시아 지역을 미국 주도의 '자유 동아시아'로 재편하고, 냉전에서 승리해야 하는 임무를 스스로 부여했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서 미국 친화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정책만으로는 부족했다. 제도 정치 영역을 넘어 미국적 가치와 반공주의를 내면화한 우방 국민을 만들어야 했다. 공산주의 침투에 맞서 스스로 싸울 수 있는 동아시아 자유 국민을 만들고자 했다.

한국전쟁 발발은 미국의 입장에서 놀라운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 신체를 통해 권력관계를 수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계기였다. 미군은 전쟁에 군사력과 물자만 지원하지 않았다. 미군이 직접 한국인을 감시하기보다 전단, 포스터,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인을 변화시키고자 했고, 미군의 감시망에 한국인들이 포획되기를 기대했다. 전쟁기 미군의 보건위생 관점은 당시 활동을 담은 사진들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전 직후 보건위생 요원들은 대규모  피난민들이 몰려든 부산 피난민촌 질병 확산을 방지하는데 집중했다.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던 거제도는 일반 행정구역처럼 별도 분리하여 관리했다. 개전 초기였던 1951년 중반까지 위생 방역 및 긴급 구호활동은 전선 변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피난민의 주요 이동로를 통제하고 전염병 확산 방지 및 DDT(유기염소계 살충제) 살포와 같은 방역 활동을 전개했다. 1951년 2월부터 8월까지 주한유엔민사원조사령부(UNCACK) 주도로 전염병 예방 활동을 전개했고, 그 결과 전체 인구의 75%에게 DDT를 살포했다. 예방 접종 활동은 1953년까지 지속되었다. 주한유엔민사원조사령부는 위생 방역 담당 요원들에게 행정책임자이자 감독자로서 위상을 스스로 가지라고 요구했다.  한국인과 신체를 매개로 권력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이었다. 위생 방역은 전염병 확산 방지라는 현실적 문제에 덧붙여 미군-한국인 사이에 감시-피감시 관계를 마련하는 수단이었다.

주한유엔민사원조사령부의 대민사업은 미국의 '자유진영' 이미지 구축과 근대문명의 전파자로서 미국의 위상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미군을 정의로운 전쟁 수행자로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위생보건과 구호복지는 중요한 선전 수단이었다. 전쟁으로부터 재도약하기 위해 국가의 능력은 국민의 신체능력으로부터 결정된다는 관점을 가졌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긴급 구호 성격이 짙었던 위생 방역 정책은 한 단계 변화했다. '공중보건'은 의료구호에서 나아가 "근대적이며 광범한 공중보건 발전의 기초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유포되었다. '일본식 공중위생' 개념을 '미국식 공중보건' 개념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수행되었다. 이는 비서구적 지식체계를 미국식 지식체계로 편입시키고, 미국 주도의 '자유 동아시아' 이미지를 위생 및 방역 차원에서 구축하는 정책이었다.

미국은 한국 의학계에 '보건위생'(public health) 개념이 부족하다고 평가하였다.  '미국식 공중보건'을 직접 교육할 한국 기관 및 한국인 전문가 육성이 시급했다. 한국전쟁기 주한유엔민사원조사령부는 한국 보건부와 협력하여 2,000여 명의 의사, 간호사를 의료구호반으로 편성했다. 의료구호반은 전선 및 각 지역에서 공중보건, 위생방역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 보건대학원에서 유학했고, 이 때에 배운 '미국식 공중보건' 지식을 다시 국내로 들여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범석, 윤유선, 백행인, 주인호, 김인달, 양재모 등의 의사는 1950년대 이래 한국 보건의학계에서 주류로 부상하였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1951년 3월부터 보건위생 업무를 담당할 영구기관 설치를 준비하였다. 기존 의료구호반이 보건소 및 보건진료소로 변모하였다. 1951년 3월 전국 보건소는 49개였는데 9월 말에는 343개로 증가했다. 정부는 전국 500개소 보건진료소 설치 계획을 수립했고, 1956년에는 보건소법을 제정하여 국민 보건관리 기초조직의 지위와 기능을 법제화했다. 1962년 9월 개정 보건소법에 따라 보건진료소는 보건소로 대체되었고, 1962년 기준 189개 시군 보건소가 설립되었다.

보건소 설치에 따라 보건인력 양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1953년 한미재단(AKF)에서 1만 달러를 지원받아 보건부 산하 공중보건원(School of Pbclic Health, Korea)이 창설되었다. 한범석 원장, 구연철 부원장, 박재빈 강사 외에도 미 제8군과 민사원조사령부(CAC)의 국내외 보건계, 의료계 전문가가 강의를 담당했다. 공중보건원은 미국의 지원과 미국의 유학을 경험한 한국인 의사에 의해 주도되었고, 각 지역에서 공중보건 업무를 담당할 전문 인력을 교육하였다. 한미재단과 국제보건기구(WHO)의 지원으로 미국식 공중보건 기관이 설립되었고, 미국식 공중보건을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된 것이다. 미국의 원조와 한국 정부의 행정력에 기초하여 '자유 동아시아'가 신체를 매개로 만들어졌다.

 

3. 수집사료 소개

 

1) 한국에서의 민간구호 및 경제원조 활동 요약보고서(1951년 11월)

참조코드 제목 생산연월
AUS004_77_00C0036_005 Summary of Activities, Civilian Relief and Economic Aid in Korea 1951-11

이 자료는 Record Group 338: Records of US Army Operational, Tactical, and Support Organizations(World War Ⅱ and Thereafter), 1917-1993 (사료군 AUS004) 산하 General Correspondence, 1951-1955[Entry A1 1301] (사료계열 AUS004_77)에 속한 자료이다. 이 사료계열은 의료 문제, 부동산, 군사 법원, 난민 및 민간구호 프로그램, 물량 조달과 보급 등의 주제에 대한 비망록, 편지, 보고서를 포함한다. 특히 이 사료건은 1951년 11월 한국 민간 구호 및 경제원조 활동을 보고서 형태로 만든 것이다. 생산자는 'UN군사령부 총본부(GHQ, UNC), 지원참모부(G-4 Section), 한국경제원조국(Korean Economic Aid Division)'이다.

이 보고서 4번 항목에서 공중보건(Public Health) 활동을 정리하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의 위생 상황은 나아지고 있으나 추운 계절이 다가오며 호흡기 질환 재유행, 전쟁으로 인한 영양 상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과거보다 구호 의료시설이 확대되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보다 세부적인 활동으로 '전염병 발생', '예방접종 프로그램', '지역별 병원 지원', DDT 살포 프로그램'을 정리하였다. 전염병은 콜레라, 디프테리아, 천연두, 장티푸스로 구분했고, 지역은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제주, 거제로 구분하여 전염병 발생 현황 통계를 작성했다. 인상적인 것은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던 거제도를 다른 행정구역처럼 구분하여 관리했다는 점이다.

예방접종 프로그램은 4대 전염병 접종 인원을 위와 동일한 지역으로 구분하여 통계 작성하였다. 그 가운데 거제도는 전체 인구 17만 3천 명이 모두 예방 접종을 완료한 것으로 보고된다. 이는 다른 지역의 접종률에 비하여 비약적으로 높은 수치로서 수용소 시설이 위생 방역에 취약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포로수용소를 둘러싼 국제적 이미지, 선전 전략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역별 병원 및 병상 지원계획도 보고되었는데 1951년 11월 기준으로 전국에는 92개 병원, 355개 보건소(dispensaries)가 운영되었다. 일평균 환자수를 지역별로 기록했는데 가장 많은 곳은 경상남도(일평균 3,163명)였고, 경상북도(1,595명)와 전라북도(1,586명)가 그 뒤를 이었다. 이 세 지역의 일평균 환자수는 서울(719명), 경기도(558명)보다 훨씬 많다. 이는 한국전쟁의 전선 이동과 수도 이전에 따라 부산을 중심으로 피난민 방역 대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DDT 살포 프로그램의 지역별 통계 및 살포 면적 통계를 정리하였다.

 

 2) 국제보건기구(WHO) 관계자들의 한국 보건시설 시찰(1955년 5월 24일)

참조코드 제목 생산기간사작일
AUS014_44_00C0079 Health, 1953-1955, 2of2 1953-09-99

이 자료는 Record Group 469: Records of US Foreign Assistance Agencies, 1942-1963 (사료군 AUS014) 산하 Central Subject Files, 1950-1956[Entry UD 1276] (사료계열 AUS014_44)에 속한 자료이다. 이 사료철에는 지역별 공중의료 담당관의 한국 방문에 관한 비망록, 의학기술 원조 요청 내용, 보건위생 지원을 위한 조직 합동계획도 등 공중보건과 관련한 정책 지원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자료에서 눈여겨 볼 것은 국제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구 사무장 슈(C.Y.. Shu) 박사와 위생관 벨스타인(Bierstein)의 한국 방문 관련 내용이다. 이들은 한국 보건시설을 시찰하기 위해 내한했는데, 1955년 5월 24일 시찰 내용을 WHO 서태평양지구 책임자인 마닐라의 팡(I.C. Fang) 박사에게 보고하였다. 보고서에는 공중보건원의 설치 및 운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범석 박사가 공중보건원 원장을, WHO 장학생으로 마닐라에서 연구한 구연철 박사가 부원장을 맡는다는 사실과 기관 설립에서의 WHO의 기여가 강조되어 있다. 공중보건원의 역할은 공중보건(public health) 기본 개념을 2개월 과정으로 가르치는 것이었으며, 실제 83명이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공중보건원의 직원 대부분은 비정규(part-time) 직원이며, 한미재단에서 직원 월급을 부담했다. 방한한 슈 박사와 벨스타인 위생관은 공중보건원에서 강의했는데, 이 자리에는 보건사회부 및 유엔한국재건단(UNKRA), 주한민사원조사령부(KCAC) 관리들이 참석하였다.

 

3)  (그림) 위생과 질병

참조코드 제목 생산일자
AUS001_06_00B0004 RPC: Pictorial Sanitation and Disease (Korean) 1954-02-17

이 자료는 RG 306: Records of the US Information Agency, 1900-2003 (사료군 AUS001) 산하 General Legal Subject File, 1950-1954[Entry UD-WW 27] (사료계열 AUS001_06)에 포함된 자료이다. 

이 자료는 "(그림) 위생과 질병"이란 한국어 자료로 1954년 2월 17일 마닐라에서 75,105부가 인쇄되어 미 해외공보처(USIS)를 통해 국내에 들어왔다. 전체 43쪽의 만화 및 위생 관련 자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자의 끝에는 "이 과정을 재삼 재사 반복 실시하여 오늘날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장차의 보건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충분히 얻도록 교육하여야 한다"고 보건부 명의로 적혀있다. 책자에는 파리, 이, 벼룩, 모기, 진드기 등의 해충과 쥐 등의 병균 전파 등이 나와있고, 흑사병, 발진티푸스, 말라리아, 발진열, 재귀열, 회충병 등의 각종 전파경로 및 예방법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1950~60년대 미 해외공보처는 '도서번역계획'을 실시했는데, 이는 후진성 극복과 문화적 독립이라는 민족주의 지향을 미국 중심의 자유진영 내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문화냉전의 한 측면으로 기획되었다. 도서번역 계획은 전쟁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미국식 지식체계를 동아시아에서 유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 해외공보처는 미국의 인문, 사회분야 도서를 각 지역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했으며, 전후 재건과 경제발전에 필요한 실용적 과학기술 및 정보 분야의 경우 한국 정부에서 이를 직접 추진했다. 미 국무부는 전쟁으로 인해 한국의 인쇄 상황이 좋지 않자 임시방편으로 해외(마닐라, 런던)에서 인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자료는 미 해외공보처와 한국 행정부처가 연계되어 위생 방역 관련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4) 미군 병사가 한국의 어느 마을 소년들에게 DDT를 살포하는 모습

 

참조코드 제목 생산일자
AUS005_06_02V0000_966 Spraying DDT[미 25보병사단 사령부 의무대대의 감독 하에 Martinez 일병이 마을 사람들에게 DDT를 뿌리는 모습] 1951-03-07
이 자료는 Record Group 111: Records of the Office of the Chief Signal Officer, 1860-1985 (사료군 AUS005) 산하 Signal Corps Photographs of American Military Activity, 1754-1954 [111-SC] (사료계열 AUS005_06)에 포함되었다. 이 사진은 미 25보병사단 의무대대 감독 하에 마르티네즈(Martinez) 일병이 마을사람들에게 DDT를 뿌리는 사진이다. 미군의 DDT 대민 살포는 일차적으로 전염병 예방의 목적과 함께 미군이 직접 마을단위, 가정단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권력을 한국인에게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5) T-6 정찰기가 서울 상공에 DDT를 살포하는 모습

참조코드 제목 생산일자
AUS033_03_01V0000_769 Air Force Activities - Korea - 1953 - Chemical Activities : A T-6 1953-10-14
이 자료는 Record Group 342: Records of US Air Force Commands, Activities, and Organizations, 1900-2003 (사료군 AUS033) 산하 Black and White and Color Photographs of US Air Force and Predecessor Agencies Activities, Facilities and Personnel - World War Ⅱ and Korean War, ca. 1940-ca.1980 [342-FH] (사료계열 AUS033_03)에 포함되었다. 이 사료계열은 한국전쟁기와 정전협정 이후 미 공군의 활동 및 항공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진은 T-6 정찰기가 서울 상공에 DDT를 공중 살포하는 것인데, 이는 한국에 주둔 중인 미 공군 병력에 대한 방역을 목적으로 실시한 것이었다. 

 

4. 한국의 위생, 방역 및 미국의 지원 관련 수집사료 현황 및 이력

 

한국의 위생, 방역 그 중에서도 공중보건(Public Health) 자료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미관계를 다루는 대부분의 사료군, 사료계열에 흩어져 존재한다. 이는 위생, 방역의 문제가 미군의 대민활동, 주한미공보처의 활동, 긴급구호 및 경제 원조 등에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군의 위생방역 활동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RG 338 문서군을, 대외원조 기관의 공중보건 지원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RG 469 문서군을, 미 해외공보처의 출판물 및 선전정책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RG 306 문서군을 확인하여야 한다. 이밖에도 RG 111, RG 342 문서군 등에서 미국의 위생방역 관련 사진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자료군 외에도 공중보건, 위생방역 문제를 다루는 자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5. 참고문헌

 

이동원, 「6.25전쟁과 한국 보건의학계 및 보건학의 형성」, 『동국사학』 69, 2020

이임하, 「한국전쟁기 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의 보건·위생 정책」, 『사회와 역사』 100, 2013

허은, 「미국의 문화냉전과 "자유 동아시아"의 구축, 연쇄 그리고 균열 - 미국정부의 도서계획과 한국사회 지식인의 인식-」, 『민족문화연구』 59, 2013

허은, 「1950년대 전반 미국의 '생체정치'와 한국사회 헤게모니 구축」, 『한국사연구』 133, 2006

 

집필: 임광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