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군도 밀리 환초 한국인 반란사건(1944년 3월)

1945년 3월, 태평양 중서부 마셜제도의 동남쪽 끝에 위치한 밀리 환초(Mili Atoll, Mille Atoll)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한국인노동자들이 밀리 환초 내 치루본섬에서 한국인들을 감시하던 일본인들을 살해하고 미군에 투항할 계획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다음날, 반란 과정에서 달아난 일본군의 제보로 일본군 토벌대가 다른 섬에서 건너와 반란을 일으킨 한국인노동자들을 집단 학살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미군이 마샬제도를 봉쇄하여 보금품 수송을 완전히 차단한 전쟁 말기에 더욱 악화되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은 남태평양 도서지역의 모든 섬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았다. 일본 본토로 향하는 과정에서, 미군은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섬만을 점령하고 나머지 섬들은 고립 봉쇄했다. 그 결과 마샬군도 내 밀리 환초는 일본 패전 때까지도 미군이 직접 점령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해군 함정으로 주변을 봉쇄하고, 간간이 소규모 전투를 수행하는 정도였다. 그 결과 밀리 환초 주둔 일본군은 극심한 식량난에 빠지게 되었다. 먹을 것이 완전히 없어진 상황에서 조선인을 살해하고 식인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조선인들은 봉기를 일으켜 미군에 투항하려고 했지만, 즉각 출동한 일본군에게 무참히 진압되었다. 

 밀리 환초에서 일어난 사건은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의 진상조사보고서(2010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지만, 강제동원조사위의 보고서는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던 이인신씨의 증언을 결정적 증거로 삼고 있었는데, 이인신의 증언은 반란사건 경험자인 박종원의 말을 옮긴 것이었다. 또한, ‘구해군군속신상조사표’에 나오는 사망자 분류 등을 토대로 저항 참여자 수를 추정했지만, 이것으로는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워서 사건의 실재를 증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밀리 환초에서의 한국인 반란 사건이 실재했음을 명백히 밝혀주는 미국 문서와 한국인 노동자들이 반란 이후 탈출하여 1945년 3월 18일 미군에 의해 구조되는 상황을 담은 사진자료 등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새롭게 발굴하여 2014년 8월에 공개하였다.

 Record Group 125는 해군법무감실 문서군인데, 이 중에서도 ‘태평양지역 전쟁범죄(Pacific Area War Crimes Cases)’를 모아놓은 박스 중에 밀리 환초 관련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1945년 3월, 조선인 노동자들이 밀리 환초에 있는 치루본(Chirubon) 섬에서 자신들을 감시하던 일본인들을 살해하고 미군에 투항할 계획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 다음 날에 반란 과정에서 달아난 일본군의 제보로 일본군 토벌대가 다른 섬에서 건너와 반란을 일으킨 조선인 노동자들을 집단 학살했다는 사실이 나와 있다.

문서에 나타나 있지 않은 그 이후의 진행 상황은 사진 자료로 보강되었다. 미 국립문서관 5층에 있는 사진실에서 발견한 해군 사진 자료(Record Group 80, General Records of the Department of the Navy, 1804 ∼ 1983) 11매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반란 이후 탈출하여 1945년 3월 18일 미군에 의해 구조되는 상황을 담은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미군에 의해 구조되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구조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설명에는 193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군)의 노예생활에 반발하여 반란(revolt)을 일으켰으며, 68명의 생존자를 미 해군이 구조했다는 사실이 적혀있다. 이는 간접 증언 등을 토대로 알려져 있어 진위여부가 불확실했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반란 사건이 실재하였음을 확인해주는 사진 기록이었다.

일본측 문서는 밀리 환초에 강제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을 '군무원'으로 분류하고 있어 이들을 일정한 대우와 임금을 보장받는 사람들로 오해할 소지가 있지만, 미군의 구조 사진에서 확인되듯이 조선인 노동자들은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려 피골이 상접한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강제동원으로 끌려와 당시 미군이 표현했던 것처럼, '노예노동자(slave laborers)' 상태였다. 

미 해군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밀리 환초 인근 마주로 환초에 체류하다가 하와이포로수용소로 보내졌고, 1946년 1월에 일본 우라가에 머물다 그 해 2월 조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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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277_02_00V0006밀레섬1945-03-99